[행복론] 기억의 역설, 잊어야 외운다

2012/02/09 |  행복이야기 > 행복론 > 

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28살 효진 양은 네 살 많은 남친에게 또 화를 냈습니다. 자상하고 따뜻한 이 남자, 다 좋은데 가끔 약속을 잊거든요. 틀림없이 중요한 약속이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정작 약속 당일에 딴소리를 하니 난처해 죽을 지경입니다. 약속 잊는 것 때문에 많이 다투기도 했고, 그럴 때마다 남친이 미안하다고 했지만, 미안하다는 말도 거듭되면서 효진 양은 영 화가 풀리지 않습니다.

사랑한다고 하면서 약속을 이렇게 자주 잊는 걸 보면 그 말이 거짓말 같고, 나는 이 남자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자존심도 상합니다. 그러던 어느 날은 남친이 되려 ‘나한테 언제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느냐’고 화를 냅니다. 어이도 없고, 이제 이 사람과 더 사귀어야 할지 고민이 많을 뿐입니다. 이 남자(아니면 이 여자), 왜 이렇게 약속을 잊는 걸까요?

제발 좀 기억해 주세요

사랑하는 사람이, 친구가, 가족이, 직장 동료가 종종 약속한 걸 잊으면 누구나 다 불쾌합니다. 스케줄이 망가져서 기분도 언짢은데, 무시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, 결국 크게 다투고 맙니다. 물론 상대방도 관심이 없거나 잊고 싶어서 잊은 건 아니겠지요. 바쁘다 보니, 이런저런 일이 많다 보니 깜박했을 겁니다. 정작 본인도 약속을 잊은 마음에 미안하고, 내가 왜 이럴까 자책감도 갖겠지요. 하지만, 어쩔 수 없잖아요. 이미 약속은 깨진 것을.

약속을 잊지 않도록 상대방이 스스로 노력하는 건 그렇다 쳐도, 내가 좀 더 강한 인상을 주어 약속을 잘 기억하게 할 수는 없을까요? 약속뿐 아니라 부탁이나 협조 같은 것들, 잊지 않게 전할 방법은 없을까요? 그렇다고 약속 시각 한참 전부터 매번 알람을 줄 수도 없고… 그런데 이런 분들이 관심 있을 만한 아주 재미있는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.

‘잊어줘’라고 말하면 더 잘 기억한다고?

뉴욕 디먼대학 R.S 심바로 박사 팀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단어 60개를 주고 외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. 그리고 좀 우습게 보이겠지만, 참가자 절반에게는 외운 것들을 바로 잊어 달라고 부탁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흔한 기억력 텍스트라고 말했습니다.

그러고 나서 외운 단어를 확인했는데 신기하게도 잊어달라고 부탁한 사람들이 단어를 더 많이 외웠습니다. 잊어달라고 부탁한 쪽 사람들은 64.8%가 60개를 정확히 외웠지만, 단순한 기억력 테스트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60.6%가 정확히 외웠다는 것입니다. (자료출처 : 나이토 요시히토, 칭찬 심리학, 지식여행 157쪽)

아무리 사람이 청개구리 기질이 있다고는 하지만, 이건 역설이라 할 만합니다. 게다가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우린 이런 일도 겪습니다. “이건 비밀인데, 너만 알고 있어. 사실 그 사람…” 일단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는 절대 잊을 수 없고, 또 절대 지킬 수 없는 비밀이지요. 이 역설을 이용하면,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더 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? 이런 겁니다. 이 정도면 100% 작전 성공입니다. 약속뿐 아니라 부탁이나 칭찬 같은 메시지들도 이렇게 살짝 뒤집어 전달하면 효과가 확실하겠지요? 약속 잊은 일로 싸우지 않고, 더 행복할 수 있다면 실험으로 검증한 이 정도 솜씨는 충분히 부려볼 만한 일 아닐까요?